2023.12.02 12:51

호스피스 병동 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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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 303호에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침대 3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만 창가에 있었다.


침대는 들어온 순서대로 배정을 받았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이 창가 쪽, 그리고 가장 나중에 들어온 내가 복도 쪽 침대를 썼다.


창 밖을 볼 수 없어서 답답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몸 상태가 아니었다.


고맙게도 창가 쪽을 쓰는 환자는 이따금씩 창 밖의 풍경 이야기를 해주었다.


"봄이 왔나 보네요. 1층 화단에 노란 개나리가 피었네요."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왜 그런가 했더니 아름드리 느티나무 때문이었는데, 짙은 초록빛이 화사한 햇빛을 받으니 눈이 부실 지경이에요."


"노란 은행잎이 장관이네요. 아이고 그래도 떨어진 잎을 쓸어담는 미화원 아저씨는 고생이네요."


"와 첫눈이에요 첫눈..."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알려주는 바깥 풍경 이야기는 몸과 마음에 생기를 주었다. 어서 빨리 나아서 직접 밖을 나가보고 싶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가장 먼저 들어온 창가 쪽 환자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1년이 조금 지난 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우리 둘은 한칸씩 자리를 옮겼다. 중앙 자리에 있던 사람이 창가로 갔고, 나는 중앙으로 갔다. 곧이어 새로운 환자가 들어와서 원래 내 자리에 누웠다.


창가로 자리를 옮긴 환자는 처음 일주일간은 별 말이 없었다. 천국으로 갔을 그 환자처럼 창 밖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은근히 조바심이 난 나는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봄이 온것 같은데, 창 밖에 개나리는 폈나요?"


"매미가 또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네요. 이런 날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한 수박이나 먹고 싶네요."


"노란 은행잎 치우시는 아저씨는 올해도 여전하시죠? 은행 열매는 냄새도 많이 나는데..."


창가의 환자도 처음에는 귀찮은지 단답형으로 짧게만 대답을 해주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전의 환자처럼 자세히 창 밖 풍경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 눈이에요 첫눈. 올해 첫 눈이 드디어 내리네요. 사람들이 좋아하네요. 한 아이는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네요."


첫 눈이 오는날, 우리는 어서 빨리 건강을 되찾아서 눈을 직접 맞는 모습을 상상했다.


간절한 바람이 통하서였을까, 창가의 환자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호스피스 병동을 떠나게 되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어서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 환자의 앞길을 축복해주었고, 나는 순서대로 창 가의 침대로 한칸 옮기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창에 드리운 커튼을 걷어내었다.


창 밖은 벽으로 막혀 있었다. 반대편 건물의 회백색 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지금은 중앙 자리에 있는, 전에는 복도 쪽에 있던 환자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지금쯤이면 노란 개나리가 피었겠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창 밖의 침침한 회백색 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아주 노랗게 예쁘게도 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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